2022년 8월호 문화 기독교 교회가 회교사원으로 성 소피아 성당과 이스탄불을 보다

2022.08.27 글마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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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교회가 회교사원으로

성 소피아 성당과 이스탄불을 보다 


글·사진 임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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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소피아 성당 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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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소피아 성당 외부 모습



유럽과 아시아에 걸쳐 있으면서 근대국가의 능률성과 ‘아라비안나이트’의 꿈을 지니고 있는 나라 튀르키예(터키). 이 나라는 관광적인 측면에서 볼 때도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나라이다. 외국인이 ‘튀르키예’에 도착하면 두가지 사실에 매혹되고 만다. 이를테면 아시아적 경관의 스케일에 압도당하고 너무나 생생한 술탄의 영광의 흔적에 놀란다. 어느 나라나 과거의 축적은 풍부하지만 이 나라는 그것이 너무 장대하기 때문이다. 유사 이래의 사건은 물론 그 이전의 인류에게 일어난 획기적인 사건들이 이 지역에서 일어난 바있다.


이 나라는 여러 모로 매우 특이한 나라다. 국민의 99%가 회교도인 점에서도 중동의 일부로 볼 수 있으나 지리적으로는 국토의 3%가 유럽 쪽에, 97%가 아시아 쪽에 붙어 있다. 세계지도를 펴놓고 보면 이스탄불은 세계의 동서남북을 잇는 교차로라는 것을 한눈에 알 수 있다. 동쪽으로는 이란, 인도, 중국으로 이어지는 아시아, 서쪽으로는 유럽대륙, 남쪽으로는 시리아, 요르단, 이집트를 거쳐 아프리카, 북쪽으로는 흑해를 넘어 거대한 러시아가 있다. 인류 역사상 찬란한 꽃을 피웠던 수많은 문명이 튀르키예를 거치며 전국토에 흔적을 뚜렷이 남겨 놓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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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 모스크



이러한 역사적 배경 때문일까. ‘튀르키예’는 참으로 다양한 얼굴로 흥미와 관심거리가 다른 여행자들을 골고루 만족시켜 준다. 역사면 역사, 문화면 문화, 종교면 종교, 건축이면 건축 어느 것 하나 모자람 없이 충족시킨다. 산에 가고 싶은 사람에게는 흑해 연안의 기기묘묘한 명산들이 기다리고 있고 바다가 그리운 사람에게는 지중해, 에게해, 흑해로 연결되는 맑고 푸른 물결이 손짓을 한다. 신비로운 자연 경관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카파도키아(Cappadocia)나 파묵칼레에 가면 반드시 놀라게 되고 이것도 저것도 아닌 여행객은 이스탄불에서 값싸고 맛있는 음식과 와인에 흥을 돋울 수 있다.


프랑스의 세계적인 건축가 르 코르뷔지에는 자신의 글 <동방기행>에서 “직접 보고, 확인하고, 네 손으로 만져보기까지 아무것도 믿지 말라”로 했다. 르 코르뷔지에의 여행은 예술의 발상과 예술의 근거, 예술의 현장을 보면서 문명의 진보에 대해 의문을 품어 왔다. 그는 긴 여행 동안 모든 감정을 총동원해 연필과 잉크로 자신이 본 것들을 끊임없이 스케치했다. 그의 지중해 여행은 그의 건축 작품을 만드는 원천이 되었으며 건축의 형태와 이미지를 낳는 데 지속적인 영향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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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 모스크로 들어가기 위해 발을 깨끗하게 닦는 곳




르 코르뷔지에는 또 “너의 눈으로 그려라! 네가 본 것이 너의 경험 속에 깊이 각인되도록 하라”고 말하고 있다. 건축현장에서 연필로 스케치하고 그릴 때 체험과 영감이 떠오른다는 것이다.


“우스크다라 가는 길에 비를 맞았노라~”라는 귀에 익은 민요가락이 은은히 흘러나오면 그곳은 십중팔구 이스탄불이다. 이스탄불은 흑해와 지중해를 잇는 천연 수로(手爐) 보스포루스 해협을 끼고 아시아 대륙과 유럽 대륙에 걸쳐 동서로 발달한 고도(古都)이다. 이른바 동서양의 분기점인 동시에 동서양을 잇는 고리점이기도 하다. 이러한 지리적 위치가 이곳을 동양적인 것과 서양적인 것이 한데 어우러진, 지구의 어느 곳에서도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모습으로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이스탄불이 지니고 있는 가장 큰 매력이자 멋이 바로 여기에 있다.


역사학자 토인비는 이스탄불을 일컬어 “인류 문명이 살아있는 거대한 옥외박물관”이라고 했다. 구시가지 중심지 메야지트지구 광장에서 10분 거리에 인류가 이룩한 5000년 역사의 문화유산들이 그대로 살아 숨 쉬고 있다. 히타이트, 앗시리아 같은 고대 오리엔트 문명에서부터 그리스·로마 문화, 초기 기독교 문화, 비잔틴 문화 그리고 이슬람 문화의 진수들이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서로 만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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톱카피 궁전 입구




이스탄불은 기원 후 300년 로마제국의 황제 콘스탄티누스 1세가 수도를 이속으로 옮겨 콘스탄티노플이라 명했던 곳이다. 그 후 콘스탄티노플은 10세기를 넘는 장구한 세월에 걸쳐 전통적 그리스 문화와 동방문화를 융화해 찬란한 비잔틴 문화를 꽃피웠던 동로마 제국의 수도로서 비잔티움이라 불리었다. 또한 로마 가톨릭교회에 대한 동방교회인 그리스 정교회의 본거지였다. 그러나 1453년 오스만 튀르크에 정복된 뒤 약 5세기 동안 오스만 제국의 수도로서 이스탄불이라는 새로운 이름 아래 이슬람문화를 혼합한 오늘날의 모습으로 단장한 것이다. 이렇듯 로마 제국, 비잔틴 제국, 오스만 제국에 이르는 세계적 3대 제국의 수도로서의 16세기 동안의 역사는 이 도시 전체를 하나의 거대한 박물관으로 남겨놓는 데 결코 인색하지 않다.


천주교 성당에서 회교 사원으로 변한 성 소피아 성당 성 소피아 성당은 지중해로 통하는 보스포루스 해협이 내려다보이는 이스탄불의 중심 산 언덕에 자리 잡고 있다. 성스러운 지혜 즉 신의 지혜인 그리스도라는 뜻의 성 소피아 성당은 세계 건축물 가운데 가장 뛰어난 작품 중 하나로 오늘날까지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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톱카피 궁전의 내부 회랑



이 성당은 유스티니아누스 황제를 위해 수학자 겸 건축가이며 구조 기술자인 안테미우스와 이시도루스에 의해 5년이라는 비교적 짧은 기간 동안 지어졌다.


최초의 돔은 아마도 지진의 후유증으로 인해 558년 붕괴되었으며 횡적인 추력이 덜한, 더 가파른 것으로 다시 지어졌다. 그 규모는 엄청나 전체적으로 직사각형의 크기는 71m×77m에 달하며 돔은 직경이 50m로 바닥에서부터 55m의 높이로 치솟고 있다. 성 소피아 성당은 지어지자마자 대걸작으로 인정받았다. 유스티니아누스 황제의 궁중시인 하울루스는 이렇게 찬미했다.


“동쪽의 반원과 서쪽의 반원에 의해 생성되는 성당의 중심부 주변에는 네 개의 힘찬 석재 피어(Pier, 지반을 굴착하여 자상과 지하에 걸쳐 기둥 모양으로 만든 지정의 총칭)가 서 있으며 이들로부터 거대한 아치가 무지개의 여신 이리스의 활처럼 솟아오르고 있다. 이 아치들은 공중으로 서서히 솟아오르면서 서로 떨어져나가게 되며 그 사이의 공간은 놀라운 기술로 채워지고 있다. 이 벽면은 아치에 접하면서 계속 펼쳐나가 아치 상부에서 하나로 합쳐진다. 돔의 기단부는 거대한 아치에 고정되어 있으며 이 돔은 마치 광휘에 뒤덮인 천상과도 같이 성당을 감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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톱카피 궁전 내부의 장식들은 바닥부터 천정 벽들까지 아름답게 장식되어 있다.




성 소피아 성당은 당시 비잔틴 제국의 문화를 실감나게 보여주고 있다. 과거 동로마 제국에는 기독교가 국교로 택하고 기독교를 중심으로 번영하였지만 15세기 중엽 이슬람 제국이 오스만 튀르크의 마호메트에 의해 정복되어 회교사원으로 바뀌었다. 마호메트는 건물과 벽화에 석회를 바르고 회교사원으로 사용해 아쉬움을 더한다. 오스만 튀르크가 정복한 당시 중요한 모자이크 작품들 위에 석회를 덧발라 모스크로 개조시킨 것이라고 전해지고 1923년 오스만 튀르크가 멸망한 후 1933년 박물관으로 그 운명이 바뀌어 버렸지만 지금까지 현존하는 건축물 가운데 가장 오래된 교회 건축물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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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탄불 시내중심가를 운행 중인 전차




블루 모스크라 불리는 술탄 아흐메트 사원

성 소피아 사원과 마주한 술탄 아흐메트 사원도 세계적 건축물의 하나로 꼽히는 ‘블루 모스크’라는 별명을 가진 유적이다. 오스만 제국의 마호메트에 의해 1609년부터 건립되어 8년간의 공사 끝에 완공된 이 모스크는 여섯 개의 웅장한 첨탑을 가지고 있으며, 기둥과 돔 벽에 명암이 있는 아흔 아홉가지의 푸른 타일만을 사용했다 해서 ‘블루 모스크’라 불린다. 비잔틴 제국때 경마장이었던 ‘블루 모스크’ 앞 광장에는 이집트의 카르나크 신전과 델포이의 아폴론 신전에서 옮겨온 대형 석주가 여행자들의 발길을 끈다.


사람들은 알라신을 위해 율법에 따라 모스크에 모여 기도를 비친다. 그러나 사원 안에 들어가 보면 아무것도 없다. 오직 마호메트가 탄생했다는 메카를 향해 기도를 바치는 것이다. 벽면에는 십자가나 불상도 없고 아무 우상도 없다. 오직 스피커를 통해 애절한 목소리로 알라신을 부르고 있다. 이슬람 건축의 대표 격인 술탄 아흐메트 사원이 천 년의 시차를 두고 성 소피아 성당과 조화를 이루고 있는 모습은 마치 형과 아우가 서로 마주하며 바라보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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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탄불 호텔 스카이라운지에서 바라본 시내 야경




석양이 에게해의 수평선에 걸리는 시각, 튀르키예 전역에는 ‘아잔’이라는 은은한 코란 소리가 수만 개의 사원에서 울려 퍼진다. 하루 일과를 무사히 마치는 기도소리이리라. 이는 또 화려한 밤의 세계가 열림을 알리는 신호의 소리이리라.


오스만 제국 예술의 극치 톱카피 궁전

이스탄불을 찾는 이들의 발길이 가장 많이 닿는 곳은 아마 성 소피아 성당과 톱카피 궁전일 것이다. 보스포루스 해협 남단 할리치 천의 강물과 해협의 바닷물이 마주치는 하구의 언덕 위에 위치한 궁전은 비잔틴 제국을 정복한 술탄 마호메트의 명에 의해 1459년에 축조되어 1467년에 완공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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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탄불 시내 상점에 양고기를 먹기 위해 줄서있는 모습



그 후 19세기 중엽에 이르기까지 줄곧 오스만 제국 술탄의 거처가 되어 온 톱카피 궁전은 수세기를 두고 거듭된 증축으로 지금의 모습을 하게 되었다. 500여 년간 오스만 제국 예술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는 이 궁전의 내부는 현재 박물관으로 이용되고 있는데, 세계 최대의 에메랄드와 84캐럿짜리 다이아몬드로 유명한 보석관과 귀중한 학습장이 되고 있는 복식과 이슬람의 성물을 전시한 종교관, 오스만 제국의 각종 무기들 특히 세계 3대 컬렉션의 하나로 1만 1000여 점을 소장한 도자기관은 우리의 문화와 관련하여 매우흥미를 끈다. 중국이나 일본에서 온 도자기들로 분류된 백자와 청자들 속에는 우리나라에서 실려 간 고려와 조선의 자기들도 섞여 있을지 모른다. 이렇게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보석과 명·청나라 때의 도자기와 각종 문화재들은 당시 술탄 왕이 받은 선물이다.


톱카피 궁 바깥 뜰 입구의 알렉산더 대왕이 사냥하는 모습을 정교하게 조각한 석관을 비롯하여 그리스·로마시대의 많은 예술품들을 소장한 고고학박물관이 있다. 또한 톱카피 궁 정문 왼쪽에 있는 이렌드교회도 6세기 비잔틴 제국 유스티니아누스 황제 때 지었다는 섬세한 벽화도 빼놓을 수 없는 건축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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